
40년 동안 더덕농사를 지었던 아빠,
더덕농사로 돈이 되지 않아 병행으로 식당도 해보고 배달, 막노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아빠다.
이제 벌써 68세가 되어가신다. 아직도 정정한 듯한데 70세를 바라보시니 세월이 체감이 된다.
아빠가 환갑이 되던 해, 셋째 딸인 나는 아빠의 더덕농사를 이어받았다. 아빠는 처음에 반대가 심했다. 네가 무슨 농사를 짓는 단말이냐. 너를 농사짓게 하려고 내가 계속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곤 '해봐라. 한 달도 안돼서 도망가겠지.'라는 마음가짐이셨는지 농장에 나오는 걸 허락했다. 그리곤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고 물어야 시큰둥 알려주었다.

<나, 남편과 아빠 그리고 작은아빠. 우리 가족은 3대째 더덕농사를 짓고 있다.>
'아빠는 참 치사하다. 아빠보다 더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배워야지..'
라는 생각에 나는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농사공부를 하며 진심으로 밭에 나가 실험해 보고 농업 전문 용어를 쓰며 아빠한테 아는 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빠는 나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이뢰 내세우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알려주기 시작했고, 아빠도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더덕농사를 배우기 시작한 첫해, 수확시즌. 우리는 아빠더덕을 완판 시켜주었다. 아니 모자랐다. (첫해엔 지인장사가 꽤 컸던 거 같다..) 아빠는 신이 났다. 다음 해 봄, 아빠는 더 더덕을 심기 시작했다.

<여름의더덕농장>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빠는 온전히 우리에게 더덕농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이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른 작물을 키우기 시작한다. 양배추, 감자, 양파, 미나리, 도라지 등
아빠가 얄밉기 시작한 건 다른 작물을 시작하고부터다. 더덕은 사실 소외작물이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거다. 마니아층이 뚜렷하고 호불호가 강하다. 연령층도 높다.
하지만 양배추, 감자, 양파, 미나리, 도라지는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대중적이고 꼭 필요한 시점들이 있어 소비자의 구매력이 강하다. 요즘 아빠의 로컬푸드에서 파는 농산물들은 불티가 난다.

<더덕꽃이 지기 전>
나는 더덕 파느라 너무 힘든데.. 아빠는 그동안 더덕 팔았던 스킬들을 온갖 동원하며 더덕 팔던 때보다 팔기 쉬운 작물들을 만나니 이제야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가 넘치고 입이 귀에 걸렸다.
"요새 더덕 많이 팔리니?"
아빠는 매일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
나는 약간 억울한 듯 말한다. 저 질문이 약 올리는 거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왜.. 더덕농사를 지어서 물려줘가지고..'
하며 매년 똑같은 패턴으로 아빠를 원망하지만, 7년째 나는 더덕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나의 운명, 더덕>
언젠가 할머니, 아빠, 작은 아빠의 노고를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3대째 물려받은 셋째 딸 시대에 말이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인 것 같다.
WELCOME ABOARD DEODEOKMONG. 맛있는 더덕미식여행, 더덕몽
40년 동안 더덕농사를 지었던 아빠,
더덕농사로 돈이 되지 않아 병행으로 식당도 해보고 배달, 막노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아빠다.
이제 벌써 68세가 되어가신다. 아직도 정정한 듯한데 70세를 바라보시니 세월이 체감이 된다.
아빠가 환갑이 되던 해, 셋째 딸인 나는 아빠의 더덕농사를 이어받았다. 아빠는 처음에 반대가 심했다. 네가 무슨 농사를 짓는 단말이냐. 너를 농사짓게 하려고 내가 계속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곤 '해봐라. 한 달도 안돼서 도망가겠지.'라는 마음가짐이셨는지 농장에 나오는 걸 허락했다. 그리곤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고 물어야 시큰둥 알려주었다.
<나, 남편과 아빠 그리고 작은아빠. 우리 가족은 3대째 더덕농사를 짓고 있다.>
'아빠는 참 치사하다. 아빠보다 더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배워야지..'
라는 생각에 나는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농사공부를 하며 진심으로 밭에 나가 실험해 보고 농업 전문 용어를 쓰며 아빠한테 아는 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빠는 나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이뢰 내세우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알려주기 시작했고, 아빠도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더덕농사를 배우기 시작한 첫해, 수확시즌. 우리는 아빠더덕을 완판 시켜주었다. 아니 모자랐다. (첫해엔 지인장사가 꽤 컸던 거 같다..) 아빠는 신이 났다. 다음 해 봄, 아빠는 더 더덕을 심기 시작했다.
<여름의더덕농장>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빠는 온전히 우리에게 더덕농사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아빠는 이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른 작물을 키우기 시작한다. 양배추, 감자, 양파, 미나리, 도라지 등
아빠가 얄밉기 시작한 건 다른 작물을 시작하고부터다. 더덕은 사실 소외작물이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거다. 마니아층이 뚜렷하고 호불호가 강하다. 연령층도 높다.
하지만 양배추, 감자, 양파, 미나리, 도라지는 호불호가 강하지 않고 대중적이고 꼭 필요한 시점들이 있어 소비자의 구매력이 강하다. 요즘 아빠의 로컬푸드에서 파는 농산물들은 불티가 난다.
<더덕꽃이 지기 전>
나는 더덕 파느라 너무 힘든데.. 아빠는 그동안 더덕 팔았던 스킬들을 온갖 동원하며 더덕 팔던 때보다 팔기 쉬운 작물들을 만나니 이제야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생기가 넘치고 입이 귀에 걸렸다.
"요새 더덕 많이 팔리니?"
아빠는 매일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
나는 약간 억울한 듯 말한다. 저 질문이 약 올리는 거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왜.. 더덕농사를 지어서 물려줘가지고..'
하며 매년 똑같은 패턴으로 아빠를 원망하지만, 7년째 나는 더덕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나의 운명, 더덕>
언젠가 할머니, 아빠, 작은 아빠의 노고를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3대째 물려받은 셋째 딸 시대에 말이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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